게임방과 청소년 출입규제

1999년 10월 10일 01시 49분
사용자 삽입 이미지
90년대 한국 사회에서 풀뿌리 차원의 대중문화는 '방 문화'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노래방에서 시작된 '방 문화'의 열풍은 우후죽순 격으로 난립했던 비디오방과 전화방을 거쳐서 이제 정보화의 물결을 타고 게임방의 호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작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게임방은 현재 전국적으로 3천여 곳이 성업중이고 매달 4백-5백 업소가 새로 문을 열고 있다고 한다. IMF 쇼크 이후 극심한 불황에 빠졌던 용산전자상가가 게임방 덕분에 새로운 활력을 맞고 있으며, 인터넷 전용선 공급업체들도 폭발적인 수요 급증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게다가 텅텅 비어있던 사무실들이 게임방으로 개조되면서 부동산 임대업이 예상치 못한 호황을 누리고, 심지어 실내 인테리어업계와 가구업계까지도 게임방 특수로 짭잘한 재미를 보고 있다니 게임방 열풍의 위력이 사뭇 대단함을 알 수 있다.

한국인들이 이토록 '방 문화'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은밀한 즐거움에 탐닉할 수 있는 밀폐된 공간이 가져다주는 안락감 때문이다. 차단막이 드리워진 밀실 속에서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고, 야한 비디오를 보며 몸을 부벼대고, 전화를 통해 음담패설을 주고받으며 사람들은 정치적·경제적·사회적으로 억압되고 짓눌려 있던 본능과 욕망들을 해소시킨다.

인터넷 전용선을 통해 빠른 속도로 정보를 검색하고 자료를 전송한다는 '건전한' 의도로 시작된 인터넷 카페가 상업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던 반면, 네트워크 게임과 각종 음란물을 즐기는 용도로 주로 이용되는 게임방이 이처럼 급속히 확산되는 것도 바로 억압으로부터의 탈출과 욕망의 분출이라는 심리를 충족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전화선을 통해 네트워크 게임과 음란물을 즐길 때 감당해야 하는 막대한 전화비의 부담과 부모의 시선이라는 현실적인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시간당 1천5백원 안팎의 비용만 지불하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사이버스페이스를 탐닉할 수 있는 게임방은 젊은이들에게 있어 또 하나의 해방구인 셈이다.

한국에서만 접할 수 있는 게임방 문화에 선진국들이 큰 관심을 갖고 면밀한 조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 주택가까지 파고든 게임방은 막대한 국가예산이 소요될 정보화 인프라 구축작업을 민간 차원에서 대신 수행해 주는 효과를 갖기 때문이다. 인터넷 고속망을 갖춘 게임방은 지역 단위의 인터넷 정보센터와 소호(SOHO) 창업 등 정보화 확산을 위한 터전으로서의 무한한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으며, 이미 정보통신부도 게임방을 우체국 등 공공기관과 함께 지역정보화의 주역인 '인터넷 플라자'로 건전하게 육성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바 있다.

그러나 요즘 게임방을 운영하는 업자들은 근심에 쌓여 있다고 한다. 바로 지난 주 발표된 청소년들의 밤 10시 이후 게임방 출입금지 조치 때문이다. 게임방 육성을 위한 정부의 첫 조치가 역설적이게도 게임방에 대한 규제로 나타난 셈이다. 네트워크 게임의 중독과 음란물 관람 등으로부터 청소년들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게임방의 주요 고객인 청소년들의 출입을 규제함으로써, 자칫하면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대중적인 정보화 시설을 성급하게 고사시켜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물론 게임방이 청소년의 새로운 탈선공간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타당하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미래 정보사회의 주역인 청소년들이 현재는 게임이나 음란물 관람 이외에는 컴퓨터를 가지고 달리 흥미를 느낄만한 일이 없다는 사실이다.

규제만이 능사는 아니다. 청소년의 게임방 출입을 막기만 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활용 기회를 만들어 줌으로써 정보통신 교육 및 인력 양성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먼저 모색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일요시사, 1999.5.24)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트랙백 주소 : http://min.kr/trackback/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