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마녀사냥에 대한 언론의 역할과 한계 (국민일보)
뉴스
2009년 12월 10일 10시 05분
우리 안의 마녀를 만들지 말자
방송 출연 화면이 사진처럼 캡처된다. 수많은 네티즌이 비난을 퍼붓는다. 고등학교 졸업사진, 대학 장학금 신청 내역, 사적인 글까지 퍼뜨린다. 이성적인 비판은 설 자리를 잃고 당사자를 조롱거리로 삼은 각종 패러디가 봇물처럼 양산된다. '루저녀' 여대생 이모씨의 이야기지만 유사한 사례는 많다. '개똥녀', 아이돌 그룹 2PM의 박재범 사건 등 시작만 다를 뿐 불특정 다수의 뭇매가 쏟아지는 과정은 모두 같다.언젠가부터 이러한 현상을 '인터넷 마녀사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터넷 언론 역시 '마녀사냥'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는 비판도 상당했다.
그래서 국민일보는 '개똥녀' 사건을 단독 보도했던 편집국 인터넷뉴스부 김상기 기자, '루저녀' 사건의 1보를 썼던 쿠키뉴스 김현섭 기자와 더불어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NGO학과 교수를 초빙해 지난 1일 본사 회의실에서 좌담회를 가졌다. 주제는 '인터넷 마녀사냥에 대한 언론의 역할과 한계'였다. 좌담은 뜨거웠다. 기자와 교수가 서로 목소리를 높였고 기자 간, 교수 간에도 다양한 이견이 드러났다.
마녀사냥의 정체는?
△황상민=마녀사냥 자체는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거나 공분을 일으키는 기사가 등장하면서 일어난다. 나는 인터넷 기자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마녀사냥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하는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민경배=마녀사냥의 개념이 마구잡이식으로 쓰이고 있다. 마녀사냥이 성립하려면 ①선동하는 소수의 사람 ②선동에 휩쓸려 공격하는 다수 대중 ③마녀로 지칭된, 그러나 죄가 없는 당사자가 있어야 한다. 흔히 마녀사냥이라 말하는 '개똥녀' '루저녀' 역시 마찬가지인데 그들은 사실, 문제가 되는 행위를 하긴 했다. 이에 대해 초기 네티즌은 나름 정의로운 생각에서 행동했다. 그 단계는 마녀사냥이 아니다. 문제는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그들이 저지른 행위에 비해 과도한 집단적 처벌이 가해진다는 점이다. 이 단계가 마녀사냥이다. 이 둘을 구분해줘야 하는데 대부분 구별하지 않고 (마녀사냥이란 말을) 사용한다.
△김상기=인터넷상에서 일어난 사건을 팩트(fact)에 맞춰 보도하는 자체는 절대 문제가 안 된다. '인터넷 기자들이 왜 이런 걸 보도했을까' 하고 비난하는 것 역시 동의할 수 없다. 마녀사냥과 반대로 '강남역 빵집아가씨'(사지가 없는 장애인에게 빵을 떼어 먹인 길지빈씨)처럼 천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나쁜 점만 있는 게 아니다. 기사로 다룰만한 팩트가 있으면 보도한다.
△김현섭=인터넷 플랫폼 자체를 봐야 한다. 같은 기사라도 종이 신문으로 전파됐다면 파급력이 크지 않았을 것이다. 두 가지로 본다. 첫 번째로 포털 사이트와 인터넷 커뮤니티로 인해 뉴스 전파 속도가 굉장히 빠르고, 효과도 강력하다. 순간적으로 마녀사냥처럼 보이는 조건이 형성되기 쉽다. 두 번째, 상대적으로 가볍고 재미있는 기사인 '인터넷 기사'의 특성 때문에 반응이 크다. 독자의 니즈(Needs)도 다양하다. 누구에게 흥미로운 기사가 다른 누구에겐 불편한 기사가 될 수도 있다.
인터넷 기자, 마녀사냥에 항변하다… 달아오른 토론
△황상민=마녀사냥이 있다는 말인지 아닌지, 민 교수 설명이 애매하다.
△민경배=존재는 한다. 그러나 네티즌의 모든 집단적 공격을 다 마녀사냥으로 덧씌워 버리는 것은 과도한 일반화다. 대부분은 죄 없는 사람을 무고하게 공격하지 않는다.
△황상민=그건 말이 안 된다. '죄가 있다, 없다'는 건 공적 기관이 판단하는 것이지 민간이 린치(lynch)를 가할 수는 없다. 린치의 당위성, 정당성을 논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인터넷 기사는 '선데이서울'과 비슷하다. 인터넷의 얘기는 인터넷에 묶어둬야 하는데 그걸 '현실언론'(황 교수는 신문 및 방송뉴스를 현실언론이라 칭했다)이 끄집어내 보도하는 것이 문제다. 인터넷 기사는 나도 재밌게 보지만 그걸로 끝나야 한다.
△김상기=나는 온·오프라인 매체에서 모두 근무했다. 온라인 매체가 오프라인 매체 제작 시스템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오프라인 매체는 출입처를 통한 주요 속보, 정책 등에 관여하게 된다. 하루 두 차례 편집회의를 거쳐 출고량과 배면이 결정된다. 반면 인터넷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빠르고 흥미진진하다.
△민경배=인터넷은 사회의 거울과 같다. '개똥녀' 사건은 현실에선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루저녀' 역시 외모 중심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세태를 반영한다. 온라인에서 촉발됐고 이슈가 됐다. 거기서 언론의 역할이 제기된다. '주워먹기식'이나 댓글 수준의 기사로는 안 된다. 단순 팩트 보도에 그치지 말고 정확히 어떤 관점을 가지고 사회에 문제제기를 해줘야 한다. 오히려 블로거들이 언론보다 더 심도 깊은 문제를 제기하는 게 현실이다.
△황상민=언론이 사회를 계몽해야 한다? 나는 강력히 반대한다. 팩트 보도면 충분하다. 다만 인터넷이 지나치게 현실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점이 문제다. 인터넷 언론은 사실 왜곡 없이 전달만 하면 된다.
△민경배=미디어의 사회적 책임을 구시대의 낡은 가치로 치부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성찰적 보도를 해야 한다.
△김상기='주워먹는 언론'에 일부 동의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 있다. 온라인은 오프라인보다 사건·사고 보도와 속보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된다. 인터넷에서 왁자지껄하다면 그 자체를 신속히 보도하는 것도 능력이다. '로우킥 동영상', 제가 주워먹은 거다. 새벽에 웅성웅성하더라. 그러면 고민하게 된다. 오프라인 마인드로는 못쓴다. 육하원칙이 하나도 맞지 않는다. 그러나 인터넷에선 논란이 되고 충격이 온다.
△황상민=주워먹은 건 그걸로 끝나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로 자꾸 침범하게 되는 것이다. 극단적인 것이 광우병 사태였다. 쇠고기를 먹으면 뇌에 숭숭 구멍이 뚫린다든지 하는 내용들을 현실언론이 받아쓰면서 사회적 손실이 커졌다. 그때부턴 언론이 아니라 선동이 된다.
△김현섭=일단 인터넷 기사도 기본이 있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기본적으로 사실 확인이 없다면 기사가 아니다. 사실 확인을 해도 생각처럼 속보가 늦지 않다. 그건 핑계고 오해다. 다만 이런 게 있다. 기자로서 '내가 왜 이 아이템을 선정했는지'를 기사에 녹여내야 한다. '루저녀' 기사를 최초로 쓸 때 여대생 이씨와 연락하려 했지만 안 되더라. 그런데 이씨의 사과문이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그러면 양쪽 입장을 다 쓸 수 있는 거다. 여기에 더해 단순 욕이나 비난이 아닌, 논리적으로 핵심을 짚는 네티즌 게시물을 기사에 인용한다. 결국 온라인이냐 오프라인 언론이냐의 이분법적 사고로 볼 게 아니다. 기자 개인에게 달려 있는 문제다.
대안은 뭔가… 중계방송을 멈춰라
△민경배=공적 타이틀을 가진 언론이 인터넷 사건을 중계하듯이 보도해서는 안 된다. '중계방송' 내용은 언론이 안 나서도 네티즌들이 먼저 안다. 그 안에서 언론으로서 공적 책임을 담보할 수 있는 기사를 써야 한다. 인터넷 언론 자체의 매체 파워는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2차 증폭을 일으키는 포털 뉴스가 또 다른 권력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네이버가 '뉴스캐스트'를 도입하면서 각 언론사가 가치 중심이 아닌 '클릭 유도형' 기사를 양산하고 있다. 기자도, 데스크도 점점 그런 기사를 요구하게 된다. 제목 하나 뽑더라도 더 읽히는 제목을 뽑으려 한다. 이러한 트렌드가 지속되면 언론 스스로 입지를 좁혀나가게 된다. 불과 2002년만 해도 포털을 언론이라고 하면 많은 언론학자들이 비웃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이를 인정한다. 이렇게 매체 환경이 바뀌어간다. 인터넷 언론도 고유한 자기 역할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황상민=모든 사람이 교수고 의사이면 전문직으로서의 의미가 사라진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전문성을 확보할 것인가. 나는 1인 미디어, 블로그 미디어가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보수적인 입장이다. 세상이 '와글와글'한 것은 살면서 다 마찬가지다. 그러면 기자들이 매일 신도림역으로 출근해야지 출입처로는 왜 나가겠나. 대중은 고삐 없는 야생마와 같다. 인터넷 언론은 대중에게 끼치는 자극이나 파급효과를 고려하지 않고 기사를 써내고 있다. 문제는 대중들이 온라인상의 이야기를 읽고 판단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현실언론이 인터넷 뉴스를 지나치게 반영하는 데 우려를 표한다. 인터넷을 하나의 생활공간으로 인정한다면 그 안에서만 놀게 만들어라.
정리=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국민일보, 2009.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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