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토론] 인터넷실명제 확대…어떻게 보십니까 (세계일보)
뉴스
2008년 07월 01일 01시 46분
촛불시위가 전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가운데 정부와 재계 등에서 인터넷 규제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인터넷 실명제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현재 실시되고 있는 인터넷 실명제인 ‘제한적 본인 확인제도’는 실제 이름이 노출되는 실명제는 아니다. 개인정보 유출 우려로 ID나 필명이 공개되는 수준이다. 일부에서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등 사이버 폭력과 역기능 사례가 발생하므로 인터넷 실명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한쪽에선 “실명제의 실효성이 별로 없는데도 이를 확대하는 것은 인터넷 여론을 관리하겠다는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이에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바람직한 방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개인정보 불법유출 막을수 있는 근본적 장치
최근 인터넷 실명제 확대를 놓고 표현의 자유 위축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인터넷실명제는 2005년 7월 한 시민이 포털의 블로그, 카페, 댓글 등을 통해 유출된 개인정보로 인해 심한 피해를 입으면서 긴급히 도입됐다. 인터넷 실명제는 정보통신망법상의 용어로는 제한적 본인 확인제이다. 또 기능적으로는 온라인 공인인증제에 가깝다.
네티즌들은 포털 등 영리 사이트에 주민번호 등 개인정보를 입력한 뒤 가입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영리 사이트의 운영자는 개인정보를 광고 마케팅에 활용하고 때에 따라서는 불법 매매하기도 한다. 또한 최근 옥션의 개인정보 대량 유출 사태에서 보듯 관리 소홀로 개인정보가 유출되기도 한다.
인터넷 실명제, 즉 온라인 공인인증제는 이런 개인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행정안전부의 인증을 거쳐 인증키를 발급받아 개인정보 입력 없이 영리 사이트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 골자이다. 그러나 포털과 게임업체 등에서는 사업적 타격을 우려해 이를 결사적으로 반대했고 결국 반쪽짜리 제도로 전락했다. 이를 의무화하지 못해 현재까지 전체 네티즌의 0.2%에만 보급된 실정이다.
인터넷 실명제는 모든 게시판에 실명으로 글을 쓰게 하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이해 관계가 걸린 사업체와 전문가의 무지와 의도적 왜곡으로 인해 제도화되지 못하고 있는 처지다. 지금의 인터넷 실명제 확대 논란 역시 정치 공방의 소재로 악용돼 오해만 깊어지고 있다.
변희재 인터넷미디어협회 정책위원장·빅뉴스 대표
주민번호 등 개인정보유출 부작용만 더 커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장관회의 개막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인터넷의 힘은 신뢰가 담보되지 않으면 독이 될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촛불시위 관련해 지금 인터넷에 분출하고 있는 국민 여론을 대통령 자신이 신뢰하지 않고 있음을 밝힌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발언이다. 최근 정부와 한나라당에서 잇따라 나오고 있는 몇 가지 인터넷 여론 대응책이란 것이 결국 인터넷을 규제하기 위한 수단이란 비판을 받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당장 방송통신위원회가 추진하려는 인터넷 실명제만 봐도 그렇다. 실명제 도입의 표면적인 취지는 악성 게시물의 폐해를 막자는 것이다. 하지만 실명제가 악성 게시물 근절에 별 효과가 없음은 이미 경험적으로 입증됐다. 지난해부터 30만명 이상이 이용하는 국내 주요 사이트에는 실명제가 적용되고 있지만 악성 게시물이 줄지 않고 있다. 실명제를 강화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질 가능성은 전혀 없으며 오히려 개인정보 유출 등 다른 부작용만 커질 것이 뻔하다.
뿐만 아니라 방송통신위원회의 일관성 없는 정책이 네티즌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지난번 옥션 등에서 개인정보 대량 유출사고가 터졌을 때 방송통신위원회는 앞으로 포털 등 인터넷 사이트의 주민등록번호 수집을 제한하고 대체수단으로 아이핀(I-PIN) 도입을 의무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엔 또 주민번호의 사용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는 실명제를 확대하겠다고 한다. 같은 기관에서 불과 한 달 사이에 나온 정책이 이렇게 상충하고 있다. 충분한 검토 없이 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쏟아내는 정책이 정부의 인터넷에 대한 몰이해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NGO학과 교수
사이버세계 신뢰높이는 책임있는 글쓰기 유도
개방과 참여로 요약되는 웹 2.0으로의 진화에 따라 인터넷의 사회적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네티즌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적극적으로 인터넷 활동에 참여해 정치,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사이버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면에는 부정적인 현상도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감성적이고 단편적인 주장, 유언비어나 악성 소문, 괴담 수준의 거짓 정보, 인신 공격이나 사생활 침해를 서슴지 않는 언어 폭력과 같은 부정적인 행태들이 긍정적이고 합리적인 의사 표현을 압도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상황은 마치 스팸 메일이 이메일 전체의 신뢰도를 급격히 떨어뜨린 것처럼 활짝 핀 우리나라의 인터넷 문화를 송두리째 흔들까 우려된다.
인터넷 실명제는 이러한 인터넷의 문제로 인해 야기되는 역기능을 최소화함으로써 사이버 세계의 신뢰를 높이고, 책임 있는 글쓰기를 통해 올바른 여론을 형성하자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32개 주요 포털과 인터넷 언론 사이트에 글을 올릴 때 본인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제한적 본인 확인 제도(제한적 실명제)가 시행되고 있다.
앞서 거론한 역기능이 인터넷 실명제 시행 후에 획기적으로 감소됐다고 말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실명제에도 여러 문제점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최환진 한신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사적영역에 가까운 인터넷 글쓰기도 검열하나
글은 쉽게 쓰면 되는 것이지 본인을 꼭 밝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정확하지 않은 내용이라고 해서, 맞춤법이 좀 틀렸다고 해서 글을 쓰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잘 쓴 글이든 못 쓴 글이든 내용이 중요하지 누가 썼는지는 중요치 않다고 본다.
자신이 썼다면 선입견을 갖고 읽힐 수 있는 글도 차명이나 필명으로 쓰면 훨씬 더 객관적으로 남들에게 읽힐 수 있다. 어느 사회에나 사회적 약자, 소수자가 있고 이들은 본인의 생각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만으로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가 있다. 수줍어하거나 천성이 겸손하거나 자신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를 꺼리는 이들도 자신의 실명을 밝히며 글을 쓰고 싶어하지 않는다. 자신의 의견만 알리고 싶을 뿐 자신이 일에 휘말려 드는 것을 꺼리는 이들도 있다. 양심고백과 내부고발은 많은 경우 익명 글쓰기를 필요로 한다. 익명으로 글을 쓰고자 하는 데에는 이처럼 많은 정당한 이유가 있다. 실명제란 바로 이런 사람들이 사실상 글을 쓰지 못하도록 규율하는 제도로서 본질적으로 사상과 표현의 자유시장을 왜곡하고 억압하는 제도이다.
자유로운 글쓰기가 괴담을 만든다는 실로 괴담스러운 주장이 있다. 인터넷 글쓰기는 대부분 사적 담론의 영역에 속한다. 우리가 친구들끼리, 친척끼리, 동호회 원끼리 만나서 대화를 나눌 때 누군가가 나서서 “정확하게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말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 모두 그 사람이 제정신인가 할 것이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정책위원
정리=황온중 기자 ojhwa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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