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시민단체나 네티즌들은 인터넷 공간에서 집단행동을 조직하기 위한 전략들을 개발해 왔다. 가장 고전적인 사례로는 1996년 미국에서 벌어진 ‘블루 리본 달기 캠페인’을 꼽을 수 있다. 클린턴 대통령이 인터넷상의 음란물 유통을 규제하는 <통신품위법>에 서명하자, 시민단체와 네티즌들이 수정헌법 1조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 침해라며 반대 운동에 나선 일이 있었다. 이때 전자프런티어재단(EFF), 미국시민자유연합(ACLU), 전자개인정보센터(EPIC) 등 시민단체들 주도로 홈페이지마다 푸른색 리본 모양의 로고를 붙이는 운동이 광범위하게 조직되었다.

한국은 PC통신 시절부터 이런 움직임이 있었다. 정부의 PC통신 검열에 항의하기 위해 게시물 제목의 말머리에 근조 리본을 뜻하는 ▶◀ 표시를 다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인터넷 시대로 넘어와서는 2002년 여중생 장갑차 사망사건으로 촉발된 광화문 촛불 시위 당시 네티즌들이 메신저 대화명 앞에 삼베 표시(▦)를 달기도 했다. 최근에는 블로그를 통한 집단적 의사표현이 나타나기도 한다. 블로거들이 특정한 메세지를 담은 리본이나 배너를 일제히 자기 블로그에 다는 것이다. 우토로 마을 살리기 캠페인이나 이랜드 불매운동 캠페인이 대표적인 예이다. 오프라인 시위에서 군중들이 피켓을 들고 약속된 구호를 외치는 행동의 온라인 버전인 셈이다.

이런 방식의 온라인 행동은 참가자들의 결집을 과시하는 효과가 있지만 공격 대상에게 보다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지는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개발된 전략이 흔히 ‘사이버 시위’라고 불리는 ‘Dos 공격(서비스 거부 공격)’이다. 약속된 시간에 공격 대상으로 삼은 사이트에 동시 접속하여 일제히 리로드(reload) 명령의 F5 버튼을 누름으로써, 접속 과부하를 일으켜 서버를 마비시켜 버리는 것이다. 물리적 타격을 가한다는 점에서 오프라인 시위에 비유하자면 점거 농성이나 연좌시위에 가깝다고 하겠다. 한국 네티즌들의 Dos 공격은 이미 국제 무대에서도 유명하다. 2001년 역사교과서 왜곡 및 독도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 문부성 사이트에 대한 공격이 있었고, 2002년에는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서 오노의 헐리우드 액션으로 김동성 선수의 금메달이 박탈당한데 분노한 네티즌들이 올림픽조직위원회 사이트에 대한 Dos 공격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 또 2004년에는 한국을 악의적으로 비하한 일본 웹사이트 2ch에 대한 Dos 공격이 ‘사이버 임진왜란’이란 이름으로 벌어지기도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최근 총선 기간 중 선거법에 의한 인터넷 실명제 적용 문제를 두고 ‘사이트 파업’이라는 이색적인 온라인 행동 전략이 등장했다. 선관위로부터 인터넷 실명제 이행 명령을 받은 한국노동네트워크(www.nodong.net(새 창으로 열기))가 선거운동 기간 중 웹사이트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현행 선거법상 실명제는 인터넷 언론사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비영리민간단체인 한국노동네트워크 사이트까지 인터넷 실명제를 강제하려는 선관위 방침에 대한 항의의 표시이다. 현재 한국노동네트워크 홈페이지에는 인터넷 실명제를 규탄하고 사이트 파업을 알리는 공지문만 덩그러니 떠 있을 뿐 모든 서비스가 중단된 상태이다.

사이트 파업은 지난 2001년 한 차례 선보인 바 있다. 당시 정통부의 인터넷내용등급제 실시에 대해 표현의 자유 침해를 문제 삼아 시민단체 등 500여 개의 사이트가 총파업을 단행했다. 그런데 사이트 파업으로 스스로의 입을 막아버리는 바람에 정작 네티즌들과의 소통과 홍보에는 실패했다는 평가가 제기되면서 그동안 사용되지 않던 전략이었다. 이번 사이트 파업은 원치 않는 인터넷 실명제를 강제 적용 받느니 차라리 사이트 문을 닫아 버리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네티즌들은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잘 모르고 있다. 이번 파업에는 또 어떤 평가가 내려질지 지켜볼 일이다.

(시사인 제30호, 2008. 4)

"시사IN" 카테고리의 다른 글

트랙백 주소 : http://min.kr/trackback/449

  1. 비밀방문자 2008년 04월 11일 09시 56분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2. 도이모이 2008년 04월 17일 09시 34분

    저도 너무 쉽게 실명제가 정착 되어 가는 모습을 보고 당황스러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중국인가요? 근데, 이것에 대해 인터넷에서 비판적인 모습은 보기 힘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