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과 출산은 구국의 결단”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출산율 저하는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한국의 인구는 2018년을 기점으로 감소 추세로 접어들 것이며, 반면 노인 인구 비율은 날로 증가하여 앞으로 2050년에는 생산가능 인구 1.4명당 1명의 노인을 부양하게 될 것이라는 통계청의 전망도 나와 있다. 이쯤 되면 ‘저출산 망국론’까지 제기될 지경이다. 그러나 정작 가임기의 젊은 여성들에게는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나왔던 1960년대의 산아제한 표어가 훨씬 현실감 있게 와 닿는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참으로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이 표현이 말이다. 맞벌이 부부가 계속 늘어나고 자녀들의 양육비, 교육비는 날로 치솟고 있는 마당에 아무리 “구국의 결단”을 부추긴다 해도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 못 면하는” 신세가 될 테니까.
그런데 저출산 문제가 한국만의 골칫거리는 아닌 모양이다. 서구 선진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도 지금 한국과 똑같은 문제로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고 한다. <여성학교>의 저자 이리스 라디쉬는 바로 이 문제에 대해 “페미니즘은 자녀 문제에 대해 아무런 대답도 남기지 않았고, 가부장제는 잘못된 대답만 남겼다”며 도발적인 일침을 가한다. 36세에 첫 아이를 낳았고, 현재 세 명의 아이를 키우면서 잡지사에 다니는 이 독일 여성은 저출산이 단지 아이를 낳기 싫어하는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남녀의 문제이며, 나아가 사회의 전반적 변화가 빚어낸 문제이다. 맞벌이를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시대, 그리고 우리의 부모 세대와 달리 아이만을 위해 인생을 바치기에는 너무나 개인주의적으로 흐른 사회에서 저출산이 여자 혼자만의 결정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사회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빠들은 가족을 위한 시간에 거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문제의식이다.
한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몇 푼 안되는 출산장려금 지급 같은 정책이 저출산 문제의 궁극적 해결책이 될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독일만 봐도 낮은 출산율은 교육받은 중산층 여성들에게서 더 눈에 띄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금의 젊은 여성들에게 다시 직장을 버리고 가정으로 돌아가 출산과 양육에만 전념하라고 요구할 일도 아니다. 통계학적으로 따져보면 전업주부가 하루 중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직장여성에 비해 고작 1시간 40분 더 많을 뿐이라고 한다. 나머지 시간은 대부분 가사 노동으로 소진되고 있다. 아이를 위한 시간으로 불과 100분을 더 확보하기 위해 여성들을 다시 가부장제 가족제도 속으로 가둬두는 퇴행적 선택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저자는 고정된 성역할을 버리고 신 부성과 신 모성이 함께 새로운 개혁 가족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그녀는 이렇게 묻는다. “아빠의 요리솜씨가 엄마보다 훨씬 좋은데도 반드시 엄마가 요리를 해야만 한다고 누가 정해놓았는가? 아빠가 딸에게 하이네의 시를 읽어주는 동안 엄마는 왜 교류전기의 비밀을 배우지 않는 것일까?” 사냥하는 아담과 청소기 미는 이브의 낙원 세계는 이제 곧 영원히 문을 닫게 될 것이다. 성역할을 새롭게 구상하고 엄마와 아빠의 생활세계가 서로 근접하지 못하는 가족에게 생존의 기회는 없을 것이라는 저자의 충고는 한국에서도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중간 중간에 책의 내용과 관련한 한국의 실태를 깔끔하게 정리한 페이지들을 만나게 된다. 저자의 메시지가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임을 절실히 느끼게 해준다. 출판사의 꼼꼼하고 사려 깊은 기획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달의 책, 200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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