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이자 사회학자인 다니엘 벨(D. Bell)은 앨빈 토플러(A. Toffler), 마뉴엘 카스텔(M. Castells)과 함께 산업사회 이후에 전개되고 있는 정보사회의 뉴 패러다임에 관한 논의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석학으로 꼽힌다. 하지만 다니엘 벨은 그동안 특히 한국의 학계에서 다른 두 학자에 비해 그 명성에 걸맞을 만큼의 대접을 제대로 받고 있지 못했다. 심지어 중대한 오독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까지 종종 발견된다. 아마도 그것은 다음 두 가지 이유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첫째, 정보사회, 지식사회, 네트워크 사회 등 새로운 문명의 패러다임을 지칭하는 온갖 화려한 신조어들이 난무하는 지식 시장의 트렌드를 거부하고 ‘탈산업 사회’라고 하는 다소 고지식한(?) 개념을 채택한 그의 고집스러움 때문이다. 그는 정보사회란 사회의 세 가지 영역인 ‘기술-경제적 영역’, ‘정치적 영역’, ‘문화적 영역’ 중 단지 ‘기술-경제적 영역’에서의 지속적인 발전을 표현하기 위한 부분적인 개념이고, 일시적 유행 같은 것일 뿐이라며 기술결정론을 경계하는 입장을 취한다. 그래서인지 다니엘 벨의 메시지는 토플러처럼 도발적이거나 카스텔만큼 선언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뿐만 아니라 지식정보와 네트워크의 확산에 대해 누구 못지않게 풍부하고 성찰적인 분석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충분히 정독하지 못한 독자들 사이에서는 탈산업사회에 대한 다니엘 벨의 서술이 단지 제조업 중심에서 서비스 부문 중심으로의 전환을 논하고 있는 것이 전부인 양 축소된 채 이해되기도 한다. 다니엘 벨 스스로도 안타까운 심정으로 밝히고 있듯이 ‘탈산업사회’라는 표현은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그것이 무엇을 함의하는지는 그리 구체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으며, 논자에 따라서 사뭇 주관적이고 자의적으로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불운하게도 <탈산업사회의 도래>라는 책이 한국 사회와는 궁합이 잘 안맞는지 시기적으로 계속 엇갈려 왔던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된 1973년의 한국은 이제 막 산업사회에 진입한 단계였다. 따라서 탈산업사회란 우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그저 먼 나라의 꿈같은 이야기처럼 받아들여졌고, 당연히 학계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특히 이 책의 대부분이 당시의 미국 사례를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는 점도 한국사회와의 연관성을 찾기 어렵게 만든 요인이었다.
1999년 인터넷 혁명 이후의 양상을 서문을 통해 대폭 보강한 제3판이 출간되었으나, 당시 한국에서는 앨빈 토플러, 존 네이스비트(J. Naisbitt), 니콜라스 네그로폰테(N. Negroponte) 등의 정보화 담론이 풍미하던 시절이라 정작 다니엘 벨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제3판을 텍스트로 한 번역본이 비로소 한국의 독자 대중에게 번역본으로 소개된 것은 그 후로도 급격하게 인터넷 환경이 바뀐 2006년의 일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3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 책의 메시지는 후학들의 여러 논의 속에 배어들어 이미 산발적으로 소개된 까닭에 정작 다니엘 벨 당사자의 본격적인 목소리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그다지 새롭고 신선하게 들리지 못하는 불행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1999년판 서문을 통해 보완된 다니엘 벨의 전망에서도 몇 가지 오류가 발견된다. 예를 들면 다니엘 벨은 최근 IPTV나 모바일 인터넷 등으로 구현되는 디지털 컨버전스 현상을 예측하지 못하고 인터넷을 TV 및 전화 시스템과 분리된 매체로 보고 있다. 또한 문서기록은 물론이요 동영상 검색까지 완벽하게 이뤄지고 있는 오늘날의 비약적인 검색 기술의 발전을 간과한 채 방대한 디지털 라이브러리 구축의 가능성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날이 갈수록 무한 확장을 거듭하고 있는 온라인 쇼핑몰의 전망에 대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미 앨빈 토플러를 비롯한 세계적인 정보화론자들의 예언이 놀랍도록 적중하고 있음을 경험적으로 체득한 한국의 독자들이기에 다니엘 벨의 이러한 실수는 그를 폄하시키는 근거로 삼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몇 가지 사소한 오류가 이 야심찬 대작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훼손시킬 수는 없다. 다니엘 벨 자신이 여러 차례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예측을 하고 있는 평론서이기 때문이다. 그는 예측(forecasting)은 예언(prediction)과 분명히 다른 것이라 못 박는다. 예언은 규칙에 복속되지 않으며, 사후에 그것이 들어맞았는지 여부에 대한 판정을 중심축으로 한다. 하지만 예측은 어떤 현상의 규칙성이나 역사적 경향으로 정식화할 수 있는 지속적인 추세를 논리적으로 그려내는 일이다. 즉 다니엘 벨이 주창한 ‘탈산업사회’라는 개념은 미래의 어떤 특정 시점을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 출현하고 있는 특징들을 기반으로 한 가정이며, 동시에 앞으로 있을 법한 일에 대한 하나의 논리적 구성물인 것이다. 실제로 다니엘 벨은 이 방대한 저서의 지면 대부분을 탈산업사회의 핵심적인 다섯 가지 구성 요소들에 대한 구체적인 양상과 전망을 서술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그 다섯 가지 구성 요소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 경제부문 : 재화생산 경제에서 서비스 경제로의 변화
- 직업분포 : 전문 ․ 기술직 계급의 부상
- 기축원리 : 혁신과 사회정책 수립의 원천으로서의 이론적 지식의 중심성
- 미래지향 : 기술통제와 기술평가
- 의사결정 : 새로운 ‘지적 기술’의 창출
그는 이러한 새로운 특성들이 과거 자본주의 문명을 특징지었던 것 같은 통일성을 보여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진단한다. 그래서 탈산업사회라는 개념에 사용된 ‘탈’(Post)이라는 표현은 갈라진 틈새시기에서의 삶이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후세의 독자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정확했는지가 아니라 오늘날 나타나는 사회의 특징이 이 책이 출간된 당시의 세계와 어떻게 비교되는지를 가늠해 보라고 주문하고 있다. 이러한 다니엘 벨의 주문을 그대로 따라 위의 다섯 가지 구성 요소를 지금의 시점에 비추어 본다면 독자들은 그의 ‘예언’이 아닌 ‘예측’이 3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진행형임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정작 다니엘 벨에게 아쉬운 점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그가 고집스럽게 고수하고 있는 ‘탈산업사회’란 명제가 전 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는 냉혹한 신자유주의 질서와 철저한 국제분업 체계가 낳은 오늘날의 양극화 구조에서는 오직 승자만의 전리품일 뿐이라는 사실을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니엘 벨은 이 책의 1973년 초판에 대해 쏟아진 구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의 비판에 대해 자신은 반맑스주의자가 아니라 포스트 맑스주의자라고 자임한 바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미국을 위시한 서구 선진 국가들이 만끽하고 있는 탈산업사회의 달콤한 열매란 그들의 내재적 동력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자본의 무한 경쟁 속에서 강제된 주변부 국가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얻어진 결과라는 사실을 놓치지 말았어야 했다.
다니엘 벨이 <탈산업사회의 도래> 3판에 장장 100여 페이지에 달하는 1999년판 서문을 새로 덧붙인 것은 정보화와 지구화라는 거대한 흐름을 자신의 탈산업사회론에 적극 반영하기 위한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혹시 그에게 또 다시 2007년판 서문을 쓸 기회가 주어진다면, 지금 전 지구를 휩쓸고 있는 신자유주의라는 거친 파도가 탈산업사회론에 어떻게 투영되는지도 꼭 한번 들어보고 싶다. 지구상의 많은 나라들 중에는 산업사회 이후로서의 탈산업사회(Post-Industrial Society)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질서의 굴레로부터 벗어난 탈산업사회(Beyond-Industrial Society)의 전망을 다니엘 벨로부터 듣고 싶어 하는 곳이 점점 더 늘어날지도 모르니 말이다.
(서평문화, 2007.봄호 제65집)
"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 &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댓글 0개 / 트랙백 0개) 2008/11/03
- 무삭제 심리학 (댓글 2개 / 트랙백 0개) 2008/07/02
- 죽음의 밥상 (댓글 0개 / 트랙백 1개) 2008/06/02
- 5.18 그리고 역사 : 그들의 나라에서 우리 모두의 나라로 (댓글 5개 / 트랙백 1개) 2008/05/06
- 여성 학교 (댓글 1개 / 트랙백 0개) 2008/04/02
- 21세기에는 지켜야 할 자존심 (댓글 3개 / 트랙백 0개) 2008/02/06
- 아웅산수찌와 버마 군부 (댓글 0개 / 트랙백 0개) 2008/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