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SNS 전문가들에게 고함
글/한국대학신문
2012년 05월 07일 18시 30분
총선 결과는 예측을 빗나갔다. 야당이 승리할 것이라던 예측도, SNS가 큰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예측도 모두 어긋났다. 많은 전문가들이 당혹스러워했다. 특히 이 두 가지 예측을 묶어 “SNS의 영향력으로 야당이 이길 것”이라 전망했던 자칭 SNS 전문가들이 가장 당혹스러워했다.
물론 당혹스럽기야 SNS를 통해 야당을 지지하던 일반 이용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로부터 즉각적인 반성의 의견들이 쏟아졌다. “SNS 안의 여론은 우물 안 개구리들의 착시 현상이었다”, “끼리끼리만 소통하는 편 가르기식 관계 맺기로는 설득 효과를 가질 수 없었다”, “온라인만으로는 오프라인을 바꿀 수 없음을 확인했다”는 등 자성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반면 자칭 SNS 전문가들로부터는 아무런 반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자신의 예측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최소한의 고백조차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신 그야말로 허를 찌르는 예상 밖의 궤변이 제시되었다. “그나마 수도권에서 야당이 승리한 것은 SNS 밀집도가 높은 지역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서울의 20대 투표율이 64%였다는 출구조사 결과까지 발표되자 자칭 SNS 전문가들은 다시 흥분하며 이렇게 외쳐댔다. “SNS의 힘으로 20대 투표율이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구차한 변명이다. 당혹스러웠던 선거 결과보다도 더 심하게 당혹스러운 일이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그렇다면 서울에서도 SNS 밀집도가 가장 높았던 강남 지역에서 파워 트위터리안이었던 정동영 후보가 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SNS에서 가장 주목도가 높았던 나꼼수의 김용민 후보가 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서울 다음으로 SNS 밀집도가 높은 부산에서 야당이 참패한 이유는? 심지어 문성근 후보 같은 파워 트위터리안까지 낙선한 이유는 또 무엇인가? 서울과 인접한 인천과 경기 지역 20대 투표율이 전체 평균 투표율에도 못 미치는 30%에 머문 이유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나?
결과를 놓고 입맛에 맞는 몇 가지 단서만을 자의적으로 뽑아 사후에 끼워 맞추는 식의 분석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는 질문이다.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처럼 SNS 요인만으로 선거 결과를 재단하려는 미디어 결정론적인 해석으로는 결코 이 질문에 속 시원한 답을 줄 수 없다. 딱 여기까지가 자칭 SNS 전문가들의 한계이다.
미디어 결정론이라는 우물 밖으로만 나오면 답은 아주 쉽게 찾아진다. 강남에서 정동영 후보의 패배는 계급 투표의 결과이다. 나꼼수 김용민 후보의 패배는 막말 파동의 역풍이 빚은 결과이다. 부산 문성근 후보의 낙선은 고질적인 지역 투표의 장벽 때문이다. 결국 SNS 요인보다는 다른 정치적 요인들이 더 크게 선거 결과에 작용했다는 이야기이다.
인터넷 신문 <이데일리>의 분석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총선 기간 중 트위터에서 팔로어 수 상위 50명의 후보 중 당선자는 14명으로 불과 28%였던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나마 최상위 10명 중에는 당선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이 역시 총선 과정에서 SNS의 영향력이 지극히 제한적이었음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굳이 전문가를 표방하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아는 답이다. 오직 미디어 결정론이라는 우물 속에서 허우적대며 모든 것을 SNS만으로 설명하려는 자칭 SNS 전문가들에게만 어려운 질문이다. 그렇다면 서울과 인천/경기 지역 20대 투표율의 큰 차이는? 글쎄, 선관위의 정확한 투표율 집계가 나온 이후에 분석을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전문가의 태도가 아닐까?
진짜 SNS 전문가라면 구차한 해석으로 억지스럽게 SNS의 선거 영향력을 강변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져야 옳다. “유럽 선거와 한국 선거에서 SNS 영향력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는가?”, “SNS 선거 전략은 어떻게 수립해야 하나?”, “SNS에서 효과적인 설득 커뮤니케이션 방안은 무엇인가?”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이 역시 SNS 안에만 들여다봐서는 결코 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이미 SNS 일반 이용자들은 우물 안 개구리들의 수다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제 자칭 SNS 전문가, 당신들만 우물 밖으로 나와 답을 찾으면 된다.
(한국대학신문, 2012. 5. 6)
"한국대학신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자칭 SNS 전문가들에게 고함 (댓글 0개 / 트랙백 0개) 2012/05/07
- 청년 정치 유감 (댓글 0개 / 트랙백 0개) 2012/03/05
- 스마트 캠퍼스, 과연 스마트한가? (댓글 1개 / 트랙백 0개) 2011/11/19
- 개인정보 유출에 대하는 우리의 자세 (댓글 0개 / 트랙백 0개) 2011/08/08
- 사이버대학 10년과 미래교육 (댓글 0개 / 트랙백 0개) 2011/05/29
- '나는 가수다' 패러디와 우리 사회의 이중잣대 (댓글 0개 / 트랙백 0개) 2011/03/27
- 저작권의 덫에 걸린 대학강의 공개 (댓글 4개 / 트랙백 0개) 2011/02/10
19대 총선을 관통할 주요 키워드라면 무엇이 있을까? ‘정치개혁’이니 ‘공천혁명’이니 하는 것들은 아직까지 내용도 실체도 없는 허울뿐인 구호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그나마 이번 총선 정국에 새롭게 눈에 띄는 키워드라면 ‘청년’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27세 청년을 비대위원으로 앉힌 새누리당은 다시 부산에서 같은 나이의 젊은 여성을 야당의 유력 대권 주자인 문재인 후보의 대항마로 내세우려 하고 있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청년 비례대표 자리를 마련해 놓고 한참 유행 중인 방송사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본 뜬 선발 과정을 진행 중이다.
총선을 앞둔 정치권이 새삼 ‘청년’을 화두로 삼은 이유는 두 가지 맥락으로 풀이된다. 하나는 청년층이 많이 사용하는 SNS의 위력이다. 지난 지방선거와 몇 차례 재보선 선거를 통해 SNS의 선거 영향력을 절감한 정치권으로서는 당연히 청년층의 표심을 잡기 위한 노력에 나설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또 하나는 반값 등록금과 청년 실업 등 청년층 관련 이슈가 지난해부터 사회적 관심사로 급부상한 까닭이다. 직접적인 이해 집단인 청년 세대가 최대 유권자층을 구성하고 있으며, 이들의 투표 참여 의지가 어느 때보다 높은 분위기임을 직감한 정치권이 청년들을 향한 표심의 구애 작전에 나선 것이다.
이유가 어찌 됐건 청년층의 정치 진출은 환영할 만한 현상이다. 참신하고 패기 넘치는 젊은 인재들이 낡은 정치판에 신선한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리라는 기대를 품게 만든다. 또 청년의 손으로 청년의 문제들을 직접 대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한 일임에 틀림없다. 다만 이런 기대감들이 지금 각 정당에서 선보이고 있는 청년 정치의 방식을 통해 과연 온전히 실현될 수 있을까 하는 점에서는 여전히 의구심이 남는다.
청년층의 이해를 대표할 만한 별다른 삶의 궤적도 찾아볼 수 없는 젊은이 몇 사람을 간택해서 언론에 띄워주는 새누리당의 방식은 공천 과정에서 늘 있어왔던 깜짝쇼의 청년 버전 그 이상을 넘지 못한다. 청년 정책을 대변할 비례 대표로 뽑는다는 명분으로 청년들을 서바이벌 장에 세워 놓고 그들끼리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만드는 두 야당의 방식도 진정성을 의심하게 한다. 여당과 야당 모두 어떻게 청년들을 위할까에 대한 고민보다는, 어떻게 하면 청년들을 위하는 모양새를 낼까에 대한 고민이 앞선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뽑힌 청년 대표가 의회에서 제대로 청년층을 대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확신을 갖기 어렵다. 기성 정치인들이 짜놓은 선거 전략 틀에 맞춰 간택되고 발탁된 청년 정치인이 과연 진정한 청년층의 대표자가 될 수 있을지, 오히려 기성 정치인들의 아바타에 머무는 것이 아닐지 우려스럽다. 모름지기 정치인이란 조직화된 세력에 기반을 두어야만 온전히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인터넷을 통해 정치 세력화한 최초의 사례라면 1992년 미국에서 결성된 온라인 조직 ‘Lead or Leave(이끌어라, 못하겠으면 떠나라)’를 들 수 있다. 청년들의 면담 요구에 “이봐. 청년들은 투표하지 않아. 그런데 내가 너희들에게 굽실거리기를 기대하는 거야?”라고 오만하게 대꾸한 위치 파울러 조지아주 상원의원에게 분개한 롭 넬슨과 조지 코완이란 두 청년의 제안으로 결성된 온라인 청년 조직이다. 그들은 불과 1년 만에 100만 명이 넘는 회원을 확보하고, 4,000만 명의 청년 유권자를 선거인 명부에 등록시키면서 미국 대선과 총선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파워 집단으로 성장했다. 이후 다시 위치 파울러 상원의원을 찾은 청년들의 피켓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이봐, 청년들은 투표해. 그러니 이제 우리에게 굽실거려 봐!”
‘Lead or Leave’의 사례는 청년이란 화두와 마주한 지금의 한국 정치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단지 청년 몇 사람의 정치 진출이 곧 청년 정치 시대의 개막은 결코 아니다. “이끌어라, 못하겠으면 떠나라” 하고 정치권을 향해 당당히 외칠 수 있는 힘과 자신감을 가진 청년다운 청년 정치의 본격적인 등장을 다가올 청춘의 계절 새 봄에 기대해도 좋을까?
(한국대학신문, 2012. 3. 4)
"한국대학신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자칭 SNS 전문가들에게 고함 (댓글 0개 / 트랙백 0개) 2012/05/07
- 청년 정치 유감 (댓글 0개 / 트랙백 0개) 2012/03/05
- 스마트 캠퍼스, 과연 스마트한가? (댓글 1개 / 트랙백 0개) 2011/11/19
- 개인정보 유출에 대하는 우리의 자세 (댓글 0개 / 트랙백 0개) 2011/08/08
- 사이버대학 10년과 미래교육 (댓글 0개 / 트랙백 0개) 2011/05/29
- '나는 가수다' 패러디와 우리 사회의 이중잣대 (댓글 0개 / 트랙백 0개) 2011/03/27
- 저작권의 덫에 걸린 대학강의 공개 (댓글 4개 / 트랙백 0개) 2011/02/10

